2013년 4월 14일 일요일

시한부종말론 소문의 진원지와 그 재판의 결론-패스티브





시한부종말론 소문의 진원지와 그 재판의 결론

소문이란 한 사람이 말하면 믿지 않고, 두사람이 말하면 혹시나 하며 의심하다가, 세 사람이 말하면 진실이라고 믿게 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헛소문일지라도 많은 사람을 이용해 반복해서 유포하면 대중에게 진실이라고 믿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의교회가 시한부종말론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는 누명을 쓴 것이 바로 헛소문을 반복적으로 유포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균형감 있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그런 헛소문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궁금해질 것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기독교 내 한 월간잡지의 주장이 그 모든 소문의 근원지다.



과거 먹고살기 어렵던 80년대를 전후한 시절, 잡지사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경영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중 종교관련 잡지는 대중잡지에 비해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는데 이때 잡지사가 생존을 위해 썼던 방법이 참 독특했다. 잡지사는 많은 교인을 보유한 교회 측에 일정 부수를 정기구독해 줄 것을 요구하고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상대 교회를 홍보해 주거나 유대관계를 유지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런 관계는 경제적 부담을 느낀 교회 측에 의해 중도에 일방적으로 해지되곤 했는데 잡지사는 이렇게 지원을 중도해지하는 교회에 대해서는 일종의 복수와 본보기 차원으로 잡지를 통해 해당 교회의 교리가 이단성을 띠고 있다는 논쟁을 일으키거나 공표하여 기독교 내에서 외면을 받게 하거나 담임목사의 사생활을 파렴치한으로 왜곡해 기사화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해당 교회를 사회적으로 고립시켜 매도하는 방법을 자주 썼다.



이 방법을 쓰기 위해서는 사진이나 글, 증언 등의 조작도 예사였고 여론조작이나 관계자들과의 연대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대응은 정기구독과 지원을 중지하는 교회뿐 아니라 애초 지원요청을 거부하는 교회에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이를 참다 못한 교회 측이 지원을 재개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오해였다고 정정공표를 하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이렇게 이단시비나 매도를 하여 상대를 압박하는 방법은 명예와 평판에 대한 훼손이 치명적인 교회에 대해서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할 수 있다. 심지어는 이단매도를 위한 조작회의가 담긴 전화통화 내용이 도청되어 신문지면에 그대로 기사화될 지경이었으니 애초 도덕성이나 객관성과는 거리가 먼 부분이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칼만 안 들었지 강도와 다를 바 없었다.


하나님의교회에 관해 기사가 다뤄지게 된 과정 역시 위의 메커니즘과 같은 방식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래서 하나님의교회는 최초 기사에서 시한부종말론 논란이 제기된 이후 이를 그대로 받아 이어가며 조금씩 내용을 변경하고 부풀린 기사들에 의해 헛소문이 꾸준히 유포되어 갔다. 그러다 1990년대 이후 하나님의교회가 급속하게 성장하자 기성 개신교계에서는 하나님의교회에 대한 견제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종교잡지사가 자신을 후원, 지지하는 개신교계의 시각과 입맛에 맞춰 책자를 발행했는데, 그 책자는 서점 등 일반판매용이 아닌 500부 정도로 소량 제작하여 개신교단에만 배포할 목적으로 제작한 것이었다. 이 책자는 하나님의교회에 대한 최초 기사인 시한부종말론 누명을 확대 재생산하여 기술하였는데, "하나님의교회가 1988년 이 세상의 종말이 온다는 시한부종말론을 주장한 이래 해를 바꿔가며 시한부종말론을 유포하고, 이로 인하여 가출하는 신도의 가족들의 탄원이 매년 제기되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결국 하나님의교회는 허위사실을 적시한 발행인을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고소하게 되었고, 검찰 조사 결과 혐의가 인정되어 기소된 후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세 차례의 재판이 있었다. 그런데 이 재판의 결과가 오늘날까지 악의적으로 왜곡되고 있어 이를 분명히 밝혀 오해와 갈등을 풀고자 한다.



첫째, 이 책자의 내용이 근거있는 사실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발행인이 직접 진술한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다음은 2001년 11월 발행인이 검찰에 출두하여 대질신문한 조서 내용이다. "물론 제가 책자를 발행할 당시 하나님의교회에서 시한부종말론을 주장했다는 근거자료는 없었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글을 게재한 것입니다." "저의 부친이 운영하던 연구소를 제가 이어받았는데 저의 부친이 생전에 OOOO 잡지에 낸 글을 보고 부친의 글을 신뢰하여 그러한 내용의 글을 게재한 것입니다. ... 제가 부친이 쓴 글의 자료에 대한 근거를 확인해 보진 않았지만 부친을 신뢰하고 글을 게재한 것입니다."

발행인이 스스로 시인했듯 아무 근거자료 없이 글을 쓴 것이다. 발행인은 근거가 없어도 부친의 글이기 때문에 신뢰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부친이라 해서 무조건 신뢰해야 하는가. 더욱이 앞서 언급한 기독교언론의 비윤리적인 행태 중 일부가 바로 발행인의 부친이 행했던 일이다. 책을 발행하는 사람이, 그것도 실존하는 사람이나 단체에 대해 비평하는 입장에서 객관적 근거와 자료에 바탕을 두지 않고 책을 발행한다는 것 자체가 기본 상식에 벗어난다. 혈연이란 이유로 합리화될 문제도 아닐 뿐더러 단순히 부친이라는 이유로 믿을 만하다는 것을 세상 어느 누가 인정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근거없이 발행인의 생각으로 쓰여진 글이기에 당연히 허위사실을 유포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될 수밖에 없었고 1심 법원에서 벌금 100만원의 형이 선고되었던 것이다. 1심 판결문 문언을 보자. "이 사건 종교단체가 위 1988년 이후에도 해를 바꿔가며 지속적으로 시한부종말론을 유포하였고, 이로 인하여 가출하는 신도가 속출하여 가족들의 탄원이 매년 제기되었다는 부분은 근거없는 허위의 사실이거나 부풀려진 사실이라고 인정된다."



그런데 1심에서 유죄선고된 이 판결이 2, 3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는데, 무죄가 선고되자 비방자들은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기소되었는데 무죄가 선고되었으니 유포된 내용이 사실이란 말 아니냐"는 논리를 펴며 법원이 판결로써 하나님의교회가 시한부종말론으로 인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것을 인정한 것이라고 우기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2, 3심 판결이 책자의 내용을 진실이라고 인정한 것일까? 절대 아니다.

둘째, 2, 3심 판결은 책자의 내용이 진실인지 허위인지를 명확히 '단정할 수 없다'는 판결이었다. 법에 무지한 자들은 허위사실로 기소되었는데 재판에서 무죄받았으니 진실이란 말 아니냐고 우기는데, 법원이 유포된 내용의 진실여부를 따질 때는 '1) 허위다, 2) 사실이다, 3) 허위인지 사실인지 판단할 수 없다' 중 하나로 판단하는 것이다. 따라서 허위사실로 기소되었는데 무죄선고를 받았다면 2)번과 3)번 중 하나가 되는 것이지 반드시 2)번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2심과 3심 재판은 사실관계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였을까? 판결문을 보자. "허위의 사실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으나... 이를 허위의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이 사건 책자 내용 중 시한부종말론과 관련한 기술들이 그 표현이 정확하지 못하거나 다소 과장된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모두 허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책자의 내용이 진실인지 허위인지 판단할 수 없다고 한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법원 판결이 하나님의교회에 대한 책자의 기술을 진실로 판결한 것이라는 주장은 왜곡된 거짓말인 것이다. 그런데 왜 무죄가 되었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인신을 처벌하는 형법에서는 확실하고 명백한 증거와 판단이 아니면 함부로 처벌할 수 없고, 비록 유죄의 의심이 들더라도 확실한 판단이 불가능한 경우 무조건 '무죄'로 판결하도록 원칙을 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를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곧, 무죄)으로 한다"는 원칙이다.

다시 말해 법관도 사람인지라 양측 주장 중 누구의 말이 맞는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는 무죄로 선고해야 한다는 원칙인 것이다. 이런 정책적 배려에 의해 무죄판결이 된 것으로 오히려 판결문언을 보면 법관은 허위 쪽에 더 많은 심증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법원은 1심에서 허위사실로 인정한 것을 2, 3심에서는 진실인지 허위인지 판단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바꾸게 된 것일까? 그것은 실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등장했기 때문이다.

셋째, 재판부의 판단을 유보하게 한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가짜 피해자였다. 허위사실임을 명확히 판단했던 재판부가 판단에 혼란을 느끼게 된 이유는 시한부종말론 주장으로 인해 실제 가출, 가정파괴의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판결문에 증인, 피해자 남편 모임, 3사 방송보도상 인터뷰한 사람들 등 여러 유형으로 기재되고 있지만 결국은 모두 피해를 주장하는 자들이었다. 만일 이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법원은 '사실이 분명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나 법원 역시 이들의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주어진 자료만으로는 알 길이 없었기 때문에 사실인지 허위인지 판단할 수 없다고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피해자라 주장하는 자들의 진위는 영영 가릴 수 없었을까? 아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에 법원이 쉽게 속아넘어가는 것처럼 보이자 계속해서 자신들이 '하나님의교회의 시한부종말 주장으로 가정파괴, 가출, 이혼, 낙태, 재산가압류 등의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였는데 결국 고소를 당해 법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었다. 앞서 책자 관련 재판에 증거로 제출되었던 이들의 주장은 총 4곳의 법원에서 모두 대법원까지 가는 재판과정에서 모두 허위사실로 확정 판결되었다. 이로써 책자 관련 재판부에 혼란을 초래했던 주장들이 모두 거짓임이 확인된 것이다. 책자 관련 재판은 이미 종료된 후였기 때문에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책자의 발행인을 다시 처벌하거나 기소할 수는 없게 되었지만 하나님의교회는 오랜 시간 시달려온 악성 루머와 누명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넷째, 책자 관련 재판과 가짜 피해자 관련 재판은 동일한 내용을 대상으로 한 재판으로 무죄가 유죄로 판결이 뒤집어진 것이었다. 앞선 책자 관련 재판이 2, 3심에서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불분명으로 인해 무죄판결 되었지만 동일한 주장에 대해 후속 판결에서 허위사실이 분명하다는 판단 속에 유죄판결 되었으므로 판결은 뒤집어졌고 '하나님의교회가 시한부종말론을 주장하여 물의를 일으켰다'는 주장은 결국 헛소문인 것이 최종 확정되었다.

후속재판 당시 피고인들은 자신들도 앞선 책자 관련 재판과 마찬가지로 무죄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책자 관련 무죄판결문을 재판부에 제출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기각하고 유죄로 판결했던 것이다. 통상 대법원 판결은 법적 권위가 매우 높아 동일한 내용에 대한 후속판결에 그대로 영향을 주게 되어 있음에도 후속판결의 법원이 판결을 뒤집고 허위사실로 판단한 대법원 판결을 다시 확정한 것은 시간이 흘러 구체적인 확인결과 책자의 내용이 허위사실임을 명백히 확인했다는 의미다.



더욱 재미있는 부분은 앞선 책자 관련 판결에서 '허위인지 사실인지 불분명하다'고 판단했던 대법관 중 2명(김O식, 김O란)이 후속판결에서 '허위사실이 분명하다'고 판결한 대법관들이라는 점이다. 이 말은 앞선 재판에서는 입증불충분으로 인해 판단이 불분명했지만 같은 대법관들이 후일에는 그 진위를 분명히 가려 확실하게 판단했다는 뜻이다.



다섯째, 사람은 법적 처벌이 아니더라도 도덕적으로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가짜 피해자들의 주장으로 혼란을 느낀 재판부가 형법원칙에 따라 정책적으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면 비록 무죄를 선고받았더라도 자중하고 근신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재판에 증인으로 섰던 자들이 허위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의 처벌을 받았다면, 그것도 자신이 했던 주장과 동일한 주장을 하다가 형사처벌을 받았다면 비록 자신은 처벌받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 주장이 거짓말이라는 것이 드러난 이상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중은커녕 자신은 일사부재리 원칙상 다시 재판받거나 기소당할 일이 없다는 것을 노리고 공공연히 책자 내용을 공개하고 유포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어, 재판의 과정을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으로서는 그것을 사실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고, 또 "무죄를 받았다"며 자랑까지 하니 더더욱 오해를 할 수밖에 없게 된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과거 개신교계 모 신문의 발행인이 위 책자 관련 재판의 피고인에게 썼던 당부의 신문기사가 생각난다. "사회구성원간 불필요한 갈등이 반복되고 만연한 소문에 사실로 오인한 사람들의 이유없는 외면과 적대가 만연하게 되어 수많은 사람이 종교적 적대감에 의해 서로 고통받고 있는데 이런 것을 충동하는 것 역시 반사회적 해악행위입니다. 오늘날 가벼운 인터넷 문화가 발달하다 보니 진지하고 균형감 있는 지성인을 찾아보기가 참 힘들고 온갖 브로커들의 협잡과 왜곡이 판치게 되는 인터넷 현실이 참 아쉽습니다. 비록 소수라도 옳은 길을 분별하여 설 수 있는 사람들이 그립습니다."


댓글 3개:

  1. 반사회적 해악행위를 저지르는 자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가 봅니다. 그들의 행위는 그대로 보응을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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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종교라는것 자체가 깨끗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적대시하고 자신과 다르다 하여 허위사실을 유포한다면
    그는 신앙인으로서 자격이 없느거겟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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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허위사실 즉 거짓말 한자는 반드시 그 댓가를 치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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