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4일 일요일

교파 분열인가?? 하나님의교회 김주철 목사


하나님의교회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분들은  어느교파인지 물어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면 교파를 따지는 자들은  그들의 분열을 의미하는 것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다른 교파  두루두루  경험하라고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진리대로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에수님의 가르침대로 행하는 교회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교회 뿐입니다.

예수님은 어떤분이지 알고 믿나요?하나님의교회재림그리스도 성령안상홍하나님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자신이 믿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믿고 있을까요??




딤전 6: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


하나님은  영생을  주신분입니다.






히 2:14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사람은 어떠합니까?  일생을  죽음의  종노릇한다고 성경은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세상  사람중에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죽어도  괜찮다는사람이  아프면  병원가고  ,약을 먹습니까?  이는 자신의 나약함을 숨기려 는 것뿐입니다.


2000년전에  초림 예수님이  오셨을때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게 하는 표적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요 6:30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어떻게  주실까요?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영생주는방법은 무엇일까요?



유월절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하나님의교회는 예수님 알려주신  새언약 유월절이  예수님 알려주신 영생주는 방법임을 증거합니다.




요 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마 26:26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세상의 수많은 교회가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영생을 주시러 오신 분인지 조차  모릅니다.  


또  예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위해 허락하신  진리조차  없습니다.



사 25: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그 가리워진 면박과 열방의 그 덮인 휘장을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




히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 하신  영생주는 진리인  새언약 유월절을  성령시대 구원자이신 재림그리스도 안상홍하나님께서  가져오셨습니다

하나님의교회 어느교파인가요?




하나님의교회를 다니는  성도라면  자주 듣는 질문이  어느교파인가요? 라는 질문 입니다.


왜  이런 질문을 할까요?  



그러면 하나님의교회에서  역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어느 교파 이셨나요?       
수많은  교파 중에서  어느교단  어느교파인지  그들 스스로 부터  답을 내놓아야  할것입니다.





하나님의교회 김주철 목사는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성경을  근거로  하나님의교회뿐이라고합니다.
고전 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행 20: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의교회 성경이 증거하고 예수님께서 직접 세우신 교회입니다.

시한부종말론 소문의 진원지와 그 재판의 결론-패스티브





시한부종말론 소문의 진원지와 그 재판의 결론

소문이란 한 사람이 말하면 믿지 않고, 두사람이 말하면 혹시나 하며 의심하다가, 세 사람이 말하면 진실이라고 믿게 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헛소문일지라도 많은 사람을 이용해 반복해서 유포하면 대중에게 진실이라고 믿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의교회가 시한부종말론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는 누명을 쓴 것이 바로 헛소문을 반복적으로 유포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균형감 있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그런 헛소문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궁금해질 것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기독교 내 한 월간잡지의 주장이 그 모든 소문의 근원지다.



과거 먹고살기 어렵던 80년대를 전후한 시절, 잡지사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경영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중 종교관련 잡지는 대중잡지에 비해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는데 이때 잡지사가 생존을 위해 썼던 방법이 참 독특했다. 잡지사는 많은 교인을 보유한 교회 측에 일정 부수를 정기구독해 줄 것을 요구하고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상대 교회를 홍보해 주거나 유대관계를 유지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런 관계는 경제적 부담을 느낀 교회 측에 의해 중도에 일방적으로 해지되곤 했는데 잡지사는 이렇게 지원을 중도해지하는 교회에 대해서는 일종의 복수와 본보기 차원으로 잡지를 통해 해당 교회의 교리가 이단성을 띠고 있다는 논쟁을 일으키거나 공표하여 기독교 내에서 외면을 받게 하거나 담임목사의 사생활을 파렴치한으로 왜곡해 기사화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해당 교회를 사회적으로 고립시켜 매도하는 방법을 자주 썼다.



이 방법을 쓰기 위해서는 사진이나 글, 증언 등의 조작도 예사였고 여론조작이나 관계자들과의 연대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대응은 정기구독과 지원을 중지하는 교회뿐 아니라 애초 지원요청을 거부하는 교회에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이를 참다 못한 교회 측이 지원을 재개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오해였다고 정정공표를 하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이렇게 이단시비나 매도를 하여 상대를 압박하는 방법은 명예와 평판에 대한 훼손이 치명적인 교회에 대해서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할 수 있다. 심지어는 이단매도를 위한 조작회의가 담긴 전화통화 내용이 도청되어 신문지면에 그대로 기사화될 지경이었으니 애초 도덕성이나 객관성과는 거리가 먼 부분이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칼만 안 들었지 강도와 다를 바 없었다.


하나님의교회에 관해 기사가 다뤄지게 된 과정 역시 위의 메커니즘과 같은 방식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래서 하나님의교회는 최초 기사에서 시한부종말론 논란이 제기된 이후 이를 그대로 받아 이어가며 조금씩 내용을 변경하고 부풀린 기사들에 의해 헛소문이 꾸준히 유포되어 갔다. 그러다 1990년대 이후 하나님의교회가 급속하게 성장하자 기성 개신교계에서는 하나님의교회에 대한 견제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종교잡지사가 자신을 후원, 지지하는 개신교계의 시각과 입맛에 맞춰 책자를 발행했는데, 그 책자는 서점 등 일반판매용이 아닌 500부 정도로 소량 제작하여 개신교단에만 배포할 목적으로 제작한 것이었다. 이 책자는 하나님의교회에 대한 최초 기사인 시한부종말론 누명을 확대 재생산하여 기술하였는데, "하나님의교회가 1988년 이 세상의 종말이 온다는 시한부종말론을 주장한 이래 해를 바꿔가며 시한부종말론을 유포하고, 이로 인하여 가출하는 신도의 가족들의 탄원이 매년 제기되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결국 하나님의교회는 허위사실을 적시한 발행인을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고소하게 되었고, 검찰 조사 결과 혐의가 인정되어 기소된 후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세 차례의 재판이 있었다. 그런데 이 재판의 결과가 오늘날까지 악의적으로 왜곡되고 있어 이를 분명히 밝혀 오해와 갈등을 풀고자 한다.



첫째, 이 책자의 내용이 근거있는 사실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발행인이 직접 진술한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다음은 2001년 11월 발행인이 검찰에 출두하여 대질신문한 조서 내용이다. "물론 제가 책자를 발행할 당시 하나님의교회에서 시한부종말론을 주장했다는 근거자료는 없었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글을 게재한 것입니다." "저의 부친이 운영하던 연구소를 제가 이어받았는데 저의 부친이 생전에 OOOO 잡지에 낸 글을 보고 부친의 글을 신뢰하여 그러한 내용의 글을 게재한 것입니다. ... 제가 부친이 쓴 글의 자료에 대한 근거를 확인해 보진 않았지만 부친을 신뢰하고 글을 게재한 것입니다."

발행인이 스스로 시인했듯 아무 근거자료 없이 글을 쓴 것이다. 발행인은 근거가 없어도 부친의 글이기 때문에 신뢰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부친이라 해서 무조건 신뢰해야 하는가. 더욱이 앞서 언급한 기독교언론의 비윤리적인 행태 중 일부가 바로 발행인의 부친이 행했던 일이다. 책을 발행하는 사람이, 그것도 실존하는 사람이나 단체에 대해 비평하는 입장에서 객관적 근거와 자료에 바탕을 두지 않고 책을 발행한다는 것 자체가 기본 상식에 벗어난다. 혈연이란 이유로 합리화될 문제도 아닐 뿐더러 단순히 부친이라는 이유로 믿을 만하다는 것을 세상 어느 누가 인정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근거없이 발행인의 생각으로 쓰여진 글이기에 당연히 허위사실을 유포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될 수밖에 없었고 1심 법원에서 벌금 100만원의 형이 선고되었던 것이다. 1심 판결문 문언을 보자. "이 사건 종교단체가 위 1988년 이후에도 해를 바꿔가며 지속적으로 시한부종말론을 유포하였고, 이로 인하여 가출하는 신도가 속출하여 가족들의 탄원이 매년 제기되었다는 부분은 근거없는 허위의 사실이거나 부풀려진 사실이라고 인정된다."



그런데 1심에서 유죄선고된 이 판결이 2, 3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는데, 무죄가 선고되자 비방자들은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기소되었는데 무죄가 선고되었으니 유포된 내용이 사실이란 말 아니냐"는 논리를 펴며 법원이 판결로써 하나님의교회가 시한부종말론으로 인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것을 인정한 것이라고 우기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2, 3심 판결이 책자의 내용을 진실이라고 인정한 것일까? 절대 아니다.

둘째, 2, 3심 판결은 책자의 내용이 진실인지 허위인지를 명확히 '단정할 수 없다'는 판결이었다. 법에 무지한 자들은 허위사실로 기소되었는데 재판에서 무죄받았으니 진실이란 말 아니냐고 우기는데, 법원이 유포된 내용의 진실여부를 따질 때는 '1) 허위다, 2) 사실이다, 3) 허위인지 사실인지 판단할 수 없다' 중 하나로 판단하는 것이다. 따라서 허위사실로 기소되었는데 무죄선고를 받았다면 2)번과 3)번 중 하나가 되는 것이지 반드시 2)번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2심과 3심 재판은 사실관계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였을까? 판결문을 보자. "허위의 사실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으나... 이를 허위의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이 사건 책자 내용 중 시한부종말론과 관련한 기술들이 그 표현이 정확하지 못하거나 다소 과장된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모두 허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책자의 내용이 진실인지 허위인지 판단할 수 없다고 한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법원 판결이 하나님의교회에 대한 책자의 기술을 진실로 판결한 것이라는 주장은 왜곡된 거짓말인 것이다. 그런데 왜 무죄가 되었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인신을 처벌하는 형법에서는 확실하고 명백한 증거와 판단이 아니면 함부로 처벌할 수 없고, 비록 유죄의 의심이 들더라도 확실한 판단이 불가능한 경우 무조건 '무죄'로 판결하도록 원칙을 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를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곧, 무죄)으로 한다"는 원칙이다.

다시 말해 법관도 사람인지라 양측 주장 중 누구의 말이 맞는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는 무죄로 선고해야 한다는 원칙인 것이다. 이런 정책적 배려에 의해 무죄판결이 된 것으로 오히려 판결문언을 보면 법관은 허위 쪽에 더 많은 심증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법원은 1심에서 허위사실로 인정한 것을 2, 3심에서는 진실인지 허위인지 판단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바꾸게 된 것일까? 그것은 실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등장했기 때문이다.

셋째, 재판부의 판단을 유보하게 한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가짜 피해자였다. 허위사실임을 명확히 판단했던 재판부가 판단에 혼란을 느끼게 된 이유는 시한부종말론 주장으로 인해 실제 가출, 가정파괴의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판결문에 증인, 피해자 남편 모임, 3사 방송보도상 인터뷰한 사람들 등 여러 유형으로 기재되고 있지만 결국은 모두 피해를 주장하는 자들이었다. 만일 이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법원은 '사실이 분명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나 법원 역시 이들의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주어진 자료만으로는 알 길이 없었기 때문에 사실인지 허위인지 판단할 수 없다고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피해자라 주장하는 자들의 진위는 영영 가릴 수 없었을까? 아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에 법원이 쉽게 속아넘어가는 것처럼 보이자 계속해서 자신들이 '하나님의교회의 시한부종말 주장으로 가정파괴, 가출, 이혼, 낙태, 재산가압류 등의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였는데 결국 고소를 당해 법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었다. 앞서 책자 관련 재판에 증거로 제출되었던 이들의 주장은 총 4곳의 법원에서 모두 대법원까지 가는 재판과정에서 모두 허위사실로 확정 판결되었다. 이로써 책자 관련 재판부에 혼란을 초래했던 주장들이 모두 거짓임이 확인된 것이다. 책자 관련 재판은 이미 종료된 후였기 때문에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책자의 발행인을 다시 처벌하거나 기소할 수는 없게 되었지만 하나님의교회는 오랜 시간 시달려온 악성 루머와 누명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넷째, 책자 관련 재판과 가짜 피해자 관련 재판은 동일한 내용을 대상으로 한 재판으로 무죄가 유죄로 판결이 뒤집어진 것이었다. 앞선 책자 관련 재판이 2, 3심에서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불분명으로 인해 무죄판결 되었지만 동일한 주장에 대해 후속 판결에서 허위사실이 분명하다는 판단 속에 유죄판결 되었으므로 판결은 뒤집어졌고 '하나님의교회가 시한부종말론을 주장하여 물의를 일으켰다'는 주장은 결국 헛소문인 것이 최종 확정되었다.

후속재판 당시 피고인들은 자신들도 앞선 책자 관련 재판과 마찬가지로 무죄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책자 관련 무죄판결문을 재판부에 제출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기각하고 유죄로 판결했던 것이다. 통상 대법원 판결은 법적 권위가 매우 높아 동일한 내용에 대한 후속판결에 그대로 영향을 주게 되어 있음에도 후속판결의 법원이 판결을 뒤집고 허위사실로 판단한 대법원 판결을 다시 확정한 것은 시간이 흘러 구체적인 확인결과 책자의 내용이 허위사실임을 명백히 확인했다는 의미다.



더욱 재미있는 부분은 앞선 책자 관련 판결에서 '허위인지 사실인지 불분명하다'고 판단했던 대법관 중 2명(김O식, 김O란)이 후속판결에서 '허위사실이 분명하다'고 판결한 대법관들이라는 점이다. 이 말은 앞선 재판에서는 입증불충분으로 인해 판단이 불분명했지만 같은 대법관들이 후일에는 그 진위를 분명히 가려 확실하게 판단했다는 뜻이다.



다섯째, 사람은 법적 처벌이 아니더라도 도덕적으로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가짜 피해자들의 주장으로 혼란을 느낀 재판부가 형법원칙에 따라 정책적으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면 비록 무죄를 선고받았더라도 자중하고 근신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재판에 증인으로 섰던 자들이 허위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의 처벌을 받았다면, 그것도 자신이 했던 주장과 동일한 주장을 하다가 형사처벌을 받았다면 비록 자신은 처벌받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 주장이 거짓말이라는 것이 드러난 이상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중은커녕 자신은 일사부재리 원칙상 다시 재판받거나 기소당할 일이 없다는 것을 노리고 공공연히 책자 내용을 공개하고 유포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어, 재판의 과정을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으로서는 그것을 사실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고, 또 "무죄를 받았다"며 자랑까지 하니 더더욱 오해를 할 수밖에 없게 된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과거 개신교계 모 신문의 발행인이 위 책자 관련 재판의 피고인에게 썼던 당부의 신문기사가 생각난다. "사회구성원간 불필요한 갈등이 반복되고 만연한 소문에 사실로 오인한 사람들의 이유없는 외면과 적대가 만연하게 되어 수많은 사람이 종교적 적대감에 의해 서로 고통받고 있는데 이런 것을 충동하는 것 역시 반사회적 해악행위입니다. 오늘날 가벼운 인터넷 문화가 발달하다 보니 진지하고 균형감 있는 지성인을 찾아보기가 참 힘들고 온갖 브로커들의 협잡과 왜곡이 판치게 되는 인터넷 현실이 참 아쉽습니다. 비록 소수라도 옳은 길을 분별하여 설 수 있는 사람들이 그립습니다."


321년 로마에서 생긴 일-패스티브닷컴



321년 로마에서 생긴 일

성경에서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일요일예배를 지켰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교회사가 이를 증명한다.


“콘스탄틴 대제는 처음으로 칙령을 내려 일요일에 정무와 사법의 일을 쉬게 하고 이어서 이 날에는 군대의 조련, 공연물의 관람을 금지하였다. 그러나 구약의 안식일의 제도를 그대로 일요일로 옮기려고 하지는 않았다. 동방에 있어서는 토요일을 안식일로서 지켰다.” <교회사, 세종문화사, 146쪽 참고>





초대교회 성도들은 일요일이 아닌 토요일에 안식일을 지켰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어째서 주간예배가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변경된 것일까.


당시 로마 제국의 과제는 피지배 민족들을 하나로 융합하는 일이었다. 이에 다신교를 숭배하는 로마로서 하나님만을 믿는 이스라엘의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은 눈엣가시였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로마제국에게 온갖 핍박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던 중 콘스탄티누스 황제를 기점으로 기독교에 대한 강경책이 회유책으로 바뀌었다. 기독교를 이용해 로마 제국을 하나로 묶는다는 계획이었다.


“콘스탄틴은 교회를 애호하려는 분명한 생각을 가지고 출발한 것은 틀림없으나 비록 그것은 그렇다 할지라도 이교도를 잘 달래는 일도 필요하였다. 따라서 밀란(Milan)에서 합의를 본 그 정책은 모든 종교는 완전히 동등한 것으로 인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콘스탄틴은 다스려 가면서 점점 더 그리스도교인을 지지하였고, 그리고 그의 목적은 그리스도교가 전 제국을 하나로 묶어 줄 세멘트가 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고 우리가 결론을 지을 수 있다.” <교회사(초대편), 대한기독교서회, 192쪽 참고>


이후 기독교는 큰 변화를 맞게 됐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했지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신인 태양신과 기독교의 하나님을 동일시했기 때문이다.-그는 ‘폰티펙스 막시무스’라는 태양신교 대제사장의 칭호를 계속해서 지니고 있었고 세례도 꺼려했다.- 이런 신앙관은 기독교 작가들과 예술가들이 그리스도를 그릴 때 태양의 상을 사용하는 것에서 쉽게 알 수 있다.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 밑에서 발견된 3세기 무덤의 모자이크에서도 그리스도를 마차에 탄 태양신으로 묘사했다. 결국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하나님을 이용해 태양신을 최후의 승자로 남긴 셈이다.


321년 콘스탄티누스는 태양신 숭배사상을 보다 견고히 했다. 일주일의 첫날을 휴일로 정하고 그날을 ‘태양의 숭배일(Sunday)’라고 명명한 것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로마의 달력에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쓰고 있던 일주일을 도입했지만 요일의 이름은 바빌로니아의 점성술에 근간을 두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21년 3월 7일 첫째 날을 태양의 날로 선포하고 이날을 예배일이자 공휴일로 정한 뒤 둘째 날은 월요일, 셋째 날은 화요일, 넷째날은 수요일, 다섯째날은 목요일, 여섯째날은 금요일, 일곱째 날은 토요일로 명명하는 칙령을 내렸다. 첫째 날(일요일)을 ‘태양의 날’이자 공휴일로 정한 것은 당시 로마인의 대다수를 차지한 미트라(태양신) 교도들을 배려하기 위함이었다. 일곱째 날, 즉 토요일을 예배일로 지켜오던 유대인들과 일부 기독교인들은 이에 반대했지만 교회 지도자와 미트라교도 등 대다수 로마인은 칙령에 지지해 일요일 휴일이 서서히 정착돼 갔다.” <2003년 12월 1일 한국일보 ‘5,000년 전엔 1년이 354일?’ 제하의 기사 중 일부)



이렇게 하나님의 절기인 안식일이 폐지되고 태양신 숭배일인 일요일예배가 기독교 내로 들어오게 되었다. 물론 기독교인들은 이 수탈의 역사를 잘 포장해나갔다. 즉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 일요일이었고 성령 강림하신 날이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주간예배를 일요일에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고 합리화한 것이다.



물론 성경에서는 이에 대한 근거를 전혀 찾을 수 없다. 가톨릭출판사에서 발간한 <억만인의 신앙>에서도 “개신교가 탄생된 당시 일요일예배는 보편적인 관습이 되어 있었고 ‘이것이 성경에 명시된 글에 따른 것이 아닌 가톨릭교회의 권위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그들은 이 관습을 그대로 계속해 오고 있다”고 기록했다.



현재 다수 기독교인들이 일요일예배를 하나님의 절기인 안식일인 양, 혹은 하나님의 권위에 의해 주간예배가 안식일에서 일요일로 변경된 양 말하고 있지만, 이는 세속적인 안위와 영광을 잡기 위해 하나님의 절기를 버린 변명에 불과하다. 일요일예배는 로마의 한 황제에 의해 제정된 태양신 숭배일일 뿐이다.